끊임없이 변화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적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적응력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우리는 매우 구체적인 지시가 있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적응력은 학습 방법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환경 속에서 최상의 정보를 찾아내 배우는 것이다.
이는 환경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다.
적응력이 뛰어난 학습자라면 한 환경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다.
지금의 환경에서 제공하는 것을 신속히 배운 다음 새롭고 더 어려운 환경으로 옮겨간다.
비지오 게임은 한 단계를 마스터할 때까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요령을 배우고 능숙해져서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여러 번 반복해야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현재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햇다면 더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적응력이 뛰어난 학습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를 성장형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반복적인 학습 습관과 자신이 선택한 몇몇 학습 양식에 빠져 있지 않다는 의미다.
반대로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학습자는 적응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2. 목표를 달성하거나 변화를 위해 100%의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3. 가장 두려워 하는 것들에 대한 내성을 키우려 노력한다.
4. 괴롭고 불쾌한 감정에 대처하는 법, 나아가 이를 수용하는 법을 배운다.
이를 위해서는 정서 조절이 필요하며, 두려움과 저항에 스스로를 직접 노출시키는 용기도 필요하다.
유연한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고 싶으면 먼저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믿어야 한다.
즉 현재로서는 막연해 보이는 목표지만 해낼 수 있다는 밎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종교적인 믿음과는 다르다. 스스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 신념이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고정형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바꿀 수 없는 지배적 정체성이 있다는 주장에 넘어간 사람들이다.
천성을 신격화하며 교육으로 무엇도 바꿀 수 없다고 믿는다.
수많은 연구들이 고정형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은 힘들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존감이 낮다. 그렇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은 태어나면서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변화를 두려워한다.
고정형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은 학습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이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배우려는 마음을 먹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들이 편안하게 여기는 학습 방식은 한 가지여서 다른 학습 방식을 요구하는 상황은 피하려 한다.
하지만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려면 여러 가지 학습 양식을 배우는 일을 꾀할 수 없다.
학습이론 연구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주로 한 가지 학습 양식을 사용한다.
또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의지할 예비 학습 양식도 몇 가지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회피하는 학습 양식도 있다. 그것은 바로 다음의 여섯 가지다.
상상 : 아이디어를 생성한다.
숙고 : 생성된 아이디어에 대해 배운다.
분석 : 배운 내용들을 종합하고 그 아이디어들을 활용할 방법에 대해 전략적 계획을 세운다.
결정 : 특정 아이디어를 실행할 방법을 결정한다.
실행 :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한 방법을 행동으로 옮긴다.
경험 : 다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거나 실패하는 등의 시도를 해본다. 그런 시도를 통해 여러 각도에서 학습한다.
여섯 가지 학습 양식 등 어느 하나라도 빠뜨린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우리는 선호하는 한 가지 양식만으로 학습하기를 원한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학습 양식에 대해서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수학을 좋아하고 이에 걸맞는 분석적인 학습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 수학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려운 문제와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여기며 주변에 멘토링과 도움을 청하기도 할 것이다.
호기심을 느끼며 수학에 관한 지식과 지평을 넓힐 수 있다.
반대로 사람들은 자신이 편안하지 않은 학습 양식에 대해서는 고정형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믿음을 갖고 일한다. 보이지 않더라도 믿는다.
비록 지금은 상상일 뿐이지만 자신이 더 잘하게 되리라 믿는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일을 하면서도 믿음이 없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한다. 의심이 많다.
자신이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므로 실제로 배우지 못한다. 자신을 틀에 가두고 앞으로도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심리학자와 학습이론가들은 어떤 학습 양식이든 배울 수 있다는 수많은 증거를 찾아냈다.
단, 유연하고 적응력이 있는 학습자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수용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개인마다 강점과 약점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우리는 강점도 약점도 없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학습 습관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런 학습 습관은 일생 동안 길러진다.
사람은 편안한 상황을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의해 거듭해서 조건화된 것이다.
특정 학습 양식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런 식으로 학습 습관을 더욱 심화시킨다. 다른 학습 양식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과 환경은 피한다.
하지만 이 모든 행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다. 그러므로 학습 습관도 바뀔 수 있다.
학습 습관이 바뀌면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변할 것이다.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실제로 배울 수 있다. 다만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배우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 이유가 강점과 약점이 태생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은 아니다.
위축된 마음, 개발이 덜 된 학습 능력, 파괴적인 신념, 나쁜 습관 때문이다.
어렵고 새로운 상황에 들어가면 당신은 유연한 학습자가 될 수밖에 없어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적응력의 본질이며 기초다.
적응력이 있는 학습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몰두라는 기술에 숙달되어야 한다.
학습에 몰두하면 변화한다. 몰두는 신념과 성장형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학습에 몰두하는 일은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어렵기 때문에 100%의 노력이 필요하다.
완전히 몰두하는 사람만이 배움의 과정을 견뎌낼 수 있다.
변화를 위해 100% 전력투구하라.
큰 파도타기는 작은 파도타기와 전혀 다르다. 큰 파도를 탈 때는 실패의 대가가 훨씬 크다.
사실 성공하지 못하면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
큰 파도를 타는 사람은 따로 있다.
수평선으로부터 시커멓고 거대한 장벽 같은 파도가 밀려올 때 그런 파도를 타고 싶어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망설이거나 완전히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파도가 삼켜버릴 것이다.
큰 파도를 타려면 100% 집중해야 한다. 잠시라도 한눈 팔거나 주저하면 실패한다.
완전히 집중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끝까지 전력투구하는 것 뿐이다.
어떤 일에 완전히 몰두할 때 우리는 그냥 열심히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자세를 보인다.
그냥 열심히 할 때 우리는 주저한다. 자신도 없다. 미심쩍어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일에 몰두해서 전력투구할 때는 정신적 안개가 말끔히 걷힌다.
무엇을 하려는지 그리고 왜 그것을 하려는지 분명해진다. 다른 선택지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번복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미련을 갖기보다 지금 가진 관계를 개선하는 데 힘쓰게 된다.
때로는 자신을 몰아붙여야 한다.
새롭고 도전적인 환경에 신속히 적응하고 싶다면 100%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귀환불능지점은 목표를 회피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가 쉬워지는 순간을 일컫는다.
당신의 가장 큰 야망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 당신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그런 노력은 강한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모든 행동은 다음 두 체계의 지배를 받는다.
행동 억제 체계 : 환경 내의 위험이나 위협에 주목하게 만든다.
위험이나 위협을 감지했을 때 행동 억제 체계가 행동에 나서지 않도록 막는다.
행동활성화 체계 : 보상에 주목하게 만든다. 보상이 감지되면 행동 활성화 체계가 보상을 얻을 수 있도록 행동한다.
이 두 체계는 끊임없는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모든 상황에서 두 체계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한다.
당신은 행동을 하거나 행동을 억누른다. 적극적으로 접근하거나 어떤 일을 막으려 노력한다. 공격 또는 수비다.
사람들은 회피 성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깊은 내면의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안전한 선택을 한다. 자신이 멍청해 보이지 않도록 계산해서 행동한다.
자신의 꿈이 제대로 달성되지 않을 경우를 상정해 여러 대안을 세워두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결국에는 대안에 주력하고, 그 대안이 그들의 삶이 된다.
당신이 부정적인 영향이나 감정을 회피하는 삶을 꾸려왔다면 그런 성향을 바꿀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당신은 그런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 정체성은 당신의 행동과 당신이 선택한 환경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렇가면 방어적인 삶에서 공격적인 삶으로 바꾸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행동은 무엇인가?
우선 금전적 투자를 통해 귀환불능지점을 경험할 수 있다.
금전적 투자는 어떤 아이디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 탐색을 마치고 결정한다.
특정 아이디어에 상당한 금액을 던지는 순간 투자자는 더 이상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
투자는 그들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심리학과 경제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몰입의 상승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몰입의 상승은 주로 사람들이 처음 했던 결정이나 투자를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생겨나는 비합리적 태도다.
이처럼 과도한 몰두의 핵심에는 매몰 비용이 있다.
많은 투자를 햇을 때 엄청난 내적 몰두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제 귀환불능지점만 설정하면 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정확히 그렇게 한다. 그들은 몽상가가 아니다. 실천가다.
그들은 그렇게 개인적으로 투자를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꿈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순간 더욱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면서 정체성과 목표에 대한 지향성 전부가 바뀐다.
그들은 이제 앞으로 가야만 하므로 더 이상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이미 행동을 했고, 이제 그 행동을 지속시켜야 한다. 그 행동을 지속시켜야 할 심리적 이유는 많다.
투자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자신이 한 행동과 정체성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정체성은 행동을 따라가지만 그 역은 반드시 성립하지 않는다.)
정말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있고, 이제 자기 충족적 예언으로 귀결될 외부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기업가들은 귀환불능지점을 경험했던 반면에 기업가 지망생들은 그런 경험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일단 귀환불능지점을 넘으면 자신의 비전을 완전히 믿게 되어 그 일에 전념한다.
그러면 역할이 변하고 그에 따라 정체성도 바뀐다. 방해만 되는 다른 대안들은 삭제한다.
스스로 강요한 일이므로 이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투자 행위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특정 인물들과의 거리도 변화시키고, 꿈에 대한 자세도 변화시킨다.
자신의 결정이 결실을 맺도록 얼마나 확신을 갖고 노력하는지, 그 확신과 노력까지도 변화시킨다.
귀환불능지점을 넘어선 후에는 멋진 일들이 일어난다. 상황이 거의 신비로울 정도로 딱 맞아 떨어지는 듯이 보인다.
사람이 확실하게 전념하는 순간 하늘의 섭리도 따라서 움직인다.
보통 때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일어나 그를 도와준다.
전념하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꿈꾸지 못했던 뜻밖의 사건과 만남, 물질적 지원이 이어질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바로 뛰어들어라.
인간은 적응력이 대한히 뛰어나다. 우리는 금방 둔감해지고 내성이 생긴다.
많은 사람이 지속적인 노출을 통해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저속함, 폭력, 섹스에 둔감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각성제 및 다른 약물에 내성을 가진 사람도 많다.
우리는 설탕 범벅인 식품들로 미각을 왜곡시켜 이제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즐기지 못한다.
거의 매일 의자에 앉아 TV 화면이나 모니터를 응시하며 열두 시간 이상을 보내게 되면서
관절통, 두통, 부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천문학적 수준의 도파민이 우리 몸에 흐르는 데 익숙하다.
사람은 어떤 것에든 적응할 수 있다. 심지어 공포심까지도.
공포에 대한 내성을 의도적으로 기르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체계적 둔감화라고 부른다.
어떤 대상이든 내성이 생길 때까지 반복해서 접촉하면 체계적으로 둔감해질 수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심상 모형을 재구성하고 거기에 적응하여 새로운 사람이 된다.
과거에는 당신을 두려움으로 마비시켰던 것들이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적 경험이 되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처음부터 원하는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낫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차가운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단계별로 적응하려다 보면 두려움에 지나치게 집중하게 되고, 고통을 겪는 시간도 길어진다.
결국 고통을 심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에 집중하지 말고 하려는 일의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 수영장에 바로 뛰어들라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할 경우 이행 과정의 충격은 짧지만 강하게 겪을 수밖에 없다.
정서적으로 가혹하기는 하지만, 몸은 아주 신속하게 그리고 본능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20초 만에 적응이 완료돼 더 이상 수영장 물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심리학 연구들은 어떤 사건에 대한 예상은 거의 항상 사건 그 자체보다 감정적인 경험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항상 결과를 예측할 때 실제보다 훨씬 나쁠 거라고 예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행동하지 않은 채 생각 속에서 고통을 만들어내고 키워간다.
그냥 바로 행동에 옮긴다면 고통도 훨씬 덜 받으며 순식간에 끝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일찍 일어나기와 같은 새로운 행동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100%의 노력으로 상황에 뛰어든다면 당신은 아주 빠르게 적응할 것이다. 다만 그 순간의 정서적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오래된 행태와 행동을 솎아내고 정리하는 과정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 낫다.
정리 과정이 아프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는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적응 과정을 압축하는 원리는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중독을 확실히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주위 환경 속에 모든 잡동사니를 단번에 치우는 것이다.
고장난 시스템을 계속해서 관리하기보다는 환경을 리셋하는 것이다.
당신이 행동하기를 미뤄온 일은 무엇인가?
혹시 수영장에 살금살금 들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두려움에 과도하게 집중함으로써 고통을 심화시키고 있는가?
도데체 언제 풍덩 뛰어들 것인가?
전력을 다해 뛰어드는 순간, 그 일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곧 거기에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며 유연한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곧바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 가장 빠르고 실용적인 학습 방법이기는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위험을 수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두려운 감정에 현명하게 대처해야만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인류 역사상 행복을 찾기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들어 보이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심리의 긍정적 층면에 초점을 둔 변화는 대단히 유익한 일이었다.
하지만 긍정심리학에서 이뤄지는 연구의 범위와 초점이 불만스러운 심리학자들도 많다.
이들은 긍정심리학 분야의 연구 대부분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인간 생활의 결정적 요소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적 감정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고 부정적 감정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긍정심리학의 핵심 전제였다.
하지만 이런 전제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기분이 좋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믿게 되엇다.
사람들은 문제에 대처하거나 해결하는 대신 회피하고 자신을 마비시키고 있다.
긍정심리학은 고통의 회피와 쾌락의 추구를 옹호하는 쾌락주의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괘락주의 세계관을 따르는 삶은 깊은 의미와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진정한 충족감과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부담과 도전 과제, 대립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종종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순간의 쾌락과 진정한 행복은 매우 다른 경험이다.
행복은 나쁜 뒷맛을 남기지 않으며 우울한 반응이 뒤따르지도 않는다.
행복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며 회한을 수반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행복은 언제나 원래의 좋은 기분과 함께 기억 속에서 계속 반복된다.
그러나 쾌락의 순간은 늘 고뇌의 원천이 되며 가시 같은 따가움을 남긴다.
스토아학파 같은 고대 철학 그리고 불교와 기독교 같은 종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쾌락주의 생활 방식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도전과 고통, 난관의 수용이 의미 있는 삶과 성장에 이르는 주요 경로들 중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쾌락주의 세계관보다는 행복론에 입각한 세계관을 받아들여
개인적 성장과 사회적 기여를 추구하는 고결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라고 설파한다.
현재 긍정심리학에 제2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 새로운 움직임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행복론을 강조한다.
그들은 삶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두 가지 모두가 개인과 사회에 최적의 결과를 가져오는데 필수라고 본다.
다음과 같은 감정도 모두 충만하고 완성된 삶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의미다.
만족 지연
불편
좌절
불만
고통
비극적인 사건
어색함
당혹스러움
반신반의
이런 감정들을 느끼는 순간은 결코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를 포함한 불쾌한 감정의 경험은 종종 놀라운 결과를 낳는다.
사람은 어렵고 도전적인 경험을 하면서 비로소 발전한다.
고통을 회피하고 무조건 감정을 숨기기만 한다면 결코 성장할 수 없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은 두려움의 건너편에 있다고 말한다.
거기에 고통, 불편, 충격, 권태, 가면증후군, 어색함, 공포, 틀림, 실패, 무지, 멍청해 보임을 더하라.
이런 감정들을 회피하는 태도가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막고 있다.
사실 이는 성공한 삶에 동반되는 당연한 감정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이 감정들을 피하려 한다.
부와 최상의 건강, 멋진 관계, 깊은 정신적 성숙은 누구나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가지려면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한다.
당신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은 해야 할 일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괴로운 감정을 느끼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당신이 순간의 감정을 무시할 용의가 있다면,
오직 현재에만 관심이 있는 인구의 99%는 잡을 수 없는 기회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어떤 일에 완전히 몰두한다면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은 피할 수 없다.
그런 힘든 감정들이 대부분의 사람을 멈추게 해줄 과속방지턱임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부정적 경험들이 당신의 오래된 약점을 제거해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당신은 억눌렀던 감정들을 분출하고 새롭고 나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 정서적으로 충격을 주었던 경험들은 금세 일상이 되고 때로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적응력이 있는 학습자가 된다는 것은 곧 환경에 통달한다는 의미다.
새롭고 어려운 환경에 숙달되려면 강제로 자신의 껍질과 습관을 깨뜨리는 수밖에 없다.
당신에게는 선호하는 학습 양식 또는 행동 방식이 있다. 하지만 당신의 방식은 당신을 고착시킬 뿐이다.
그보다는 당면한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요구되는 행동을 해야만 한다.
개인적 발전과 성공을 향해 빠르게 나아갈 계획이라면 성공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엄청난 도전과 책임이 따르는 상황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마치 큰 파도카기를 할 때처럼 100% 전력투구해야 한다.
전력투구의 자세를 갖추게 해줄 가장 빠른 길은 자신과 자신의 결정에 투자하는 것이다.
두려움과 불쾌한 감정 역시 받아들여야 하며, 그런 감정들을 마주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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