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주의 근심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을 믿으면 그에게 제압당하게 된다.
신하는 군주와 골육의 친분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군주의 위세에 얽매여 어쩔 수 없이 섬기는 것이다.
따라서 신하된 자는 군주의 마음을 엿보고 살피느라 잠시도 쉬지 못하는데,
군주는 그 위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교만하게 처신하니,
이것이 세상에서 군주를 협박하고 시해하는 일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군주가 자산의 아들을 매우 신뢰하면, 간신들은 태자를 이용해 자신의 사욕을 이루려고 할 것이다.
군주가 자기 부인을 지나치게 신뢰하면, 간신들은 그 부인을 끌어들여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자 할 것이다.
만승지국의 군주나 천승지국의 왕과 후비 혹은 부인 그리고 적자로서 태자로 옹립된 이들 중
간혹 군주가 일찍 죽기를 희망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
부부는 골육의 정이 없다.
서로 사랑하면 가깝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소원해진다.
남자는 나이 오십이 되어도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치질 않으나, 여자 나이 삼십이면 미모는 쇠한다.
미모가 쇠한 부인이 호색한 장부를 섬기면 그 자신이 내몰리고 천시죄지 않을까 염려하고
자식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까 염려하게 된다.
이것이 후비와 부인들이 군주가 죽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어머니가 태후가 되고 자식이 군주가 되어 명령을 내리면 실행되지 않는 것이 없고, 금령을 내리면 전부 그쳐지니,
남녀 간의 환락도 선왕이 살아 있을 때보다 줄지 않으며, 만승의 대국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터럭만큼의 의심도 없다.
이것이 군주를 짐주(鴆酒)로 독살하거나 은밀하게 목을 졸라 죽이려는 까닭이다.
군주가 이 사실을 모른다면 환난이 일어날 요소가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군주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많을 수록 군주는 위험해진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수레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며,
관을 짜는 사람은 사람이 요절해 죽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레를 만드는 사람이 어질고 관을 만드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부유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을 팔 수 없기 때문이며,
관을 짜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사람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죽어야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비나 부인과 태자가 무리를 이루고 군주가 죽기를 바라는 것은
군주가 죽지 않으면 세력이 클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군주가 죽기를 바라는 것은 군주를 증오해서가 아니라 군주가 죽음으로써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주는 자신이 죽었을 때 이익이 돌아가게 될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해나 달 곁의 기운이 밖을 에워싸도 적은 그 안에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증오하는 자를 방비하지만, 재앙은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검증되지 않은 일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평소와 다른 음식은 먹지 않는다.
군주는 먼 곳의 상황에까지 귀를 기울이고 가까이에 있는 일들은 직접 관찰해 조정 안팎의 잘못을 밝혀내며,
신하들의 의견이 같은가 다른가를 따져 각 당파 간 분쟁의 실정을 헤아린다.
그리고 군주는 여러 방면의 증거를 대조하여 신하가 진언한 실적을 추궁하며,
일을 실행한 뒤에는 신하가 앞서 진언했을 당시의 말과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살핀다.
법률에 따라 백성들을 다스릴 때는 여러 단서들에 근거해 비교하고 관찰한다.
선비가 요행으로 상을 받게 하는 일이 없게 하며,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형을 선고할 때 반드시 합당하게 하고 죄를 지었을 때 사면해주지 않는다면,
간사한 자들이 사사로운 욕심을 품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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