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story/202102_한비자

비내(備內) - 군주의 권세를 빌려주면 위치가 바뀌게 된다.

요역이 많아지면 백성들이 고통스럽고,

백성들이 고통스러우면 벼슬아치의 권세가 일어나며,

권세가 일어나면 백성들의 부역을 면제해주고 받는 대가가 커진다.

그 대가가 커지면 벼슬아치들은 부유해진다.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여 벼슬아치들을 부유하게 하고, 권세를 일으켜서 신하들에게 빌려주는 것은

천하의 이익을 위한 장기적인 방안이 아니다.

그래서 요역이 줄어들면 백성들이 편안해지고,

백성들이 편안하면 벼슬아치들이 권한을 강화하지 못하며,

벼슬아치들이 권한을 강화하지 못하면 권세는 사라지고,

권세가 사라지면 덕은 군주에게 있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이것은 물이 불을 이길 수 잇는 것과 같이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나 가마솥을 그 중간에 두면 물은 끓어올라 모두 위로 증발하지만,

불은 솥 아래에서 기세 좋게 타올라 물이 불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법률이 간사함을 제압할 수 잇는 것은 물이 불을 이길 수 있는 것보다 더 명백하다.

그러나 법률을 집행하는 벼슬아치가 물과 불을 갈라놓는 가마솥의 행동을 한다면,

법률은 단지 군주의 마음속에서만 분명할 뿐 간사함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할 것이다.

 

상고시대로부터 전해져오는 말과 춘추의 기록을 보면,

법을 어기고 군주를 배반하여 중대한 죄를 범하는 일은 

일찍이 높은 직위와 강력한 권세를 가진 대신들에게서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법령의 적용 범위나 형벌의 심판에 의해 처벌을 받은 대상은 늘 권세 없고 가난한 이들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절망하고 울분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

 

재신들은 저희들끼리 세력을 만들어서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암암리에 서로 돕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서로 미워해 사적인 정분이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그들은 서로의 눈과 귀가 되어 군주의 틈을 엿본다.

군주의 이목을 가려지면 상황을 들을 방도가 없으니 군주는 이름만 있고 실제 권력은 없게 되며,

신하들은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집행하게 된다.

 

군주의 권세를 빌려주면 상하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그래서 신하에게 권세를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