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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02106_전쟁론

8. 전쟁 계획 - 전쟁은 정치의 한 도구(3)

현실적 전쟁의 본성을 생각하면 제3편 제3장에서 논의한 다음의 명제를 상기하게 된다.

즉 모든 전쟁의 가능한 성격과 일반적 양상은 주로 정치적 요인과 상황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오늘날 전쟁은 대체로 개별 부분들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모든 개별 활동은 전체에 기여하며 전체적 구상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전쟁 수행을 위한 최고의 입장, 기본 노선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정치의 관점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여 전쟁 계획은 하나의 틀에 의해 주조된 것처럼 수립된다.

상황의 파악과 판단은 보다 쉽고 무리가 없어진다.

신념은 보다 확고하고 동기는 보다 확실하며 역사는 보다 이해하기 쉬워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치적 이익과 군사적 이익의 대립은 상황의 본질상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대립이 일어난다면 이 대립은 불완전한 인식 능력 때문에 생긴 결과일 뿐이다.

정치가 전쟁이 성취할 수 없는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가설은 정치가 사용하려는 도구(전투력)을 알고 있다는

당연한 가정과 상반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군사적 사건의 과정을 제대로 평가하는 한,

어떤 군사적 사건과 경향이 전쟁의 목표에 가장 적합한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독자적 권리이다.

 

한 마디로 전쟁술의 최고의 영역은 정치이다.

그러나 외교각서가 아니라 회전을 수단으로 실행되는 정치이다.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 볼 때 중대한 군사적 사건 또는 계획은

순수하게 군사적 판단에 관한 문제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허용될 수 없고 

또 정치와 전쟁을 구분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국가의 정부들이 즐겨하는 것처럼

전쟁 계획의 수립시 순수하게 군인들로부터 군사적 조언만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한 방법이다.

그러나 더욱 불합리한 것은 전쟁 계획 또는 전역 계획을 순수하게 군사적 관점으로 수립하도록

모든 사용 가능한 군사적 수단을 야전사령관의 권한에 맡겨야 한다는 이론가들의 요구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오늘날 군사제도의 다양성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기본 윤곽은 여전히 정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기술적으로 표현한다면 전쟁은 전쟁의 기본 윤곽은 군사기관이 아닌 정치기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상의 논술은 본질적으로 당연하다.

전쟁에 필요한 어떤 기본 계획도 정치적 요인을 무시하고 수립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빈번히 발생하지만, 전쟁 수행에 미치는 정치의 나쁜 영향에 관해 논의할 경우

우리는 이러한 영향의 의미와 전혀 다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비난해야 할 대상은 정치의 영향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이다.

정치가 옳다면, 즉 정치가 스스로의 목표에 부합된다면 그것은 전쟁 수행에 유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의 영향이 목표와 거리가 멀다면 그 원인은 그릇된 정치 자체에 있다.

 

그러나 정치가 스스로의 본질에 맞지 않는 그릇된 결과를 낳게 될 어떤 군사적 수단과 조치에만 의지한다면

졍치적 결정은 전쟁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 올바른 사고를 하면서도 종종 틀린 언어 표현을 하는 것처럼

정치도 종종 정치 본래의 의도와 맞지 않는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끊임없이 있었으며, 정치적 교류를 지도하려면

군사에 대한 명확한 통찰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논의를 계속하기 전에 우리는 유사하지만 그릇된 의미를 경계해야 한다.

군주가 정치 지도자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 공문서 처리에 여념이 없는 전쟁 장관이나

박식한 엔지니어, 경험이 풍부한 야전군인들이 최고의 정치 지도자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주요 특성은

군사에 대한 통찰력이 아니라 탁월한 지성과 강인한 성격이어야 한다.

 

군사에 대한 통찰력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보완될 수 있다.

밸르일 형제와 수아죌 공작은 훌륭한 군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역사상 이들이 통치한 시대의 군사 및 정치적 상황보다 최악이었던 사례는 없었다.

 

전쟁이 정치의 의도에 또 정치가 전쟁 수단에 완전하게 부합되어야 한다면,

한 사람이 정치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군인일 수 없는 한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이 가능하다.

즉 내각이 최고사령관 활동의 주요 국면에 관여할 수 있도록

최고사령관을 내각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도 심각한 시간 손실 없이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내각 또는 정부가

작전전구와 근접한 위치에 있을 경우에만 실행 가능하다.

 

이러한 방법의 실효성이 완벽하게 입증된 사례가 있다.

1809년 오스트리아 황제와 1813년, 1814년, 1815년 동맹군주들이 그랬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최고 사령관이 아닌 군인이 내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나.

이러한 개입이 건전하고 활기판 행동을 낳은 예는 거의 없었다.

카르나가 1793년, 1794년, 1795년 파리에 위치하면서 전쟁을 지도했던 예는 

전적으로 적절하지 못한 경우였다.

왜냐하면 공포정치는 혁명정부만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역사적인 고찰을 마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