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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02103_상군서

신법(愼法) - 법을 신중히 하다

무릇 오늘날 세상에서 그 어지러워지는 방법으로 다스리지 않는 나라가 없다.

그래서 작게 다스리면 작게 어지러워지고 크게 다스리면 크게 어지러워진다.

오늘날 세상에서 그 백성을 잘 다스리는 군주가 없어 세상에 혼란하지 않는 나라가 없어서다.

무억을 어지러워지는 방법으로 다스린다고 말하는 것인가?

대저 현명한 자와 능력있는 자를 등용하는 것은 세상이 다스려지는 방법이지만 

이런 다스림이 어지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이른바 현명한 자는 하는 말이 올바르고 말을 올바르게 한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속한 당파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듣고서 재능 있다고 여긴다.

그의 말을 듣고서 재는있다고 여긴다. 그 당파에세 물어보면 그렇다고 해서다.

그러므로 작위와 녹봉으로 귀하게 되는 것은 먼저 그 공적을 기다리지 않는다.

형별로 처벌해 주살하는 것은 먼저 그 죄가 있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러한 형세는 부패한 관리들이 남의 힘을 의지해서 그 간사함과 음험함을 만들고 소인이 남의 함을 의지해서

그 간교함과 속임수를 행사하는 짓을 정당하게 한다.

처음에 관리와 백성이 간사함과 속임수의 단서를 빌려 시작했는데 그 뒤에 그들에게 단정하고 올바름을 요구하는 것은

우임금이라도 100명의 백성조차 다스릴 수 없게 하는데 용렬한 군주가 어찌 한 나라의 백성을 제어할 수 있겠는가?

저쪽 사람이 당파에 들어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군주를 기대지 않고도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자다.

윗사람이 한 당파에 속한 백성을 등용하면 그 백성은 군주의 입장을 버리고 사적인 교제로 돌아선다.

백성이 군주의 입장을 버리고 사적인 교제로 돌아서면 군주는 약해지고 신하는 강해진다.

군주된 사람이 잘 살피지 못하면 제후들에게 침략받지 않아도 반드시 백성에게 겁박받는다.

저들이 유세하는 말의 기세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 모두 똑같이 배우게 되니 선비가 유세하는 사람들에게 배우면

백성은 실제의 일을 버리고 헛소리를 읊어댄다. 

백성이 실제의 일을 버리고 헛소리를 읊어대면 역량은 줄어들고 잘못이 많아진다.

군주된 사람이 잘 살피지 않으면 전쟁으로 반드시 그 장수를 잃고 수비하는데 반드시 그 성을 팔아먹는 자가 나온다.

 

그러므로 밝은 군주와 충신이 오늘날 세상에 나와서 그 나라를 거느릴 수 있는 것은

잠시라도 법을 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밝은 군주는 당파의 임용을 깨뜨려 쳐부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들을 절제시키고 없애 버렸으며

법을 채택해 다스렸다.

관리들로 하여금 법이 아니고서는 일을 주고나하지 못하게 하면 비록 교활할지라도 간사한 짓을 할 수 없다.

백성으로 하여금 전쟁이 아니고서는 그 능력을 드러낼 수 없도록 하면 비록 음험할지라도 속이는 짓을 할 수 없다.

대서 법으로 서로를 다스리고 술수로 서로를 등용하면 서로 칭찬하는 것으로 서로에게 이익을 줄 수 없고

서로 비방하는 것으로 서로에게 피해 줄 수도 없다.

백성은 서로 칭찬하는 것이 무익함을 보면 서로 나쁜 짓을 부화뇌동하려는 것도 회피하며

서로 비방하는 것이 해를 끼치지 못함을 보고서 서로 미워해도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것에 익숙해진다.

대저 사랑하는 사람은 아부하지 않고 미워하는 사람은 해를 끼치지 않으며 각자 그로 인해 올바르게 되니 

다스림의 극치다. 그리서 상앙은 법을 채택하면 나라가 다스려진다고 말했던 것이다.

 

천 대의 전차를 동원해 지킬 수 있는 나라는 스스로 생존하고 1만 대의 전차를 동원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는

그 자체로 전쟁을 끝낸다.

그럴 경우 비록 걸왕이 군주가 된다 할지라도 그 적을 굴복시키기 위해 반 마디의 비굴한 말도 하지 않는다.

반면 밖으로는 전쟁을 할 수 없고 안으로는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요임금이 군주가 된다 할지라도

이른바 자신의 나라와 같지 않은 나라에도 신하가 되어 화해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부터 보건대 나라가 중시되는 것과 군주가 존경받는 것은 힘이다. 농사와 전쟁 두 가지는 힘의 근본이다.

그런데 세상의 군주들은 힘을 다 할 수 없으니 왜 그런가?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농사만 한 것이 없고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전쟁만한 것이 없다.

이 두 가지 일은 효자도 그 부모를 위해 하기 어렵고 충신이라도 그 군주를 위해 하기 어렵다.

오늘날은 그 많은 백성을 다그쳐서 효자와 충신도 하기 어려운 바를 내주니 

신하가 잘못하면 형벌로 겁박하면서도 보상으로는 다그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세속에서 다르시는 자가 법도를 버리고 변설과 지혜를 채택하지 않는 것이 없고 

공적과 힘을 뒤로하고 어짊과 의로움을 앞세우니 백성이 이런 이유로 농사와 전쟁에 힘쓰지 않는다.

이렇게 백성이 농사에 그 힘을 돌리지 않으니 곧 식량은 안에서 부족해지고 전쟁에 그 절개를 돌리지 않아

군대는 밖에서 약해진다.

나라 안으로 들어오면 식량이 부족하고 밖으로 나가면 군대는 약하니 비록 만 리의 땅이 있고

갑옷 두른 백만의 군대가 있을지라도 틀판에 홀로 서 있는 셈이다.

또한 선왕은 그 백성에게 시퍼런 갈날을 밟고 화살과 돌을 맞도록 명령할 수 있었다. 백성이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배우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해를 입지 않으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므로 상앙이 가르칠 명령은 백성이 이익을 얻고싶어 하면 농사 아니면 이익을 얻을 수 없으며

해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전쟁 아니면 모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라 안의 백성은 먼저 농사와 전쟁에 힘쓰지 않으면 그 즐거운 바를 얻을 수 없다.

그래야 땅이 줄어들어도 곡식은 많아지고 백성이 줄어들어도 군대는 강성해진다.

이 두 가지를 나라 안에서 실행할 수 있으면 패왕의 도는 다하는 것이다.